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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상식을 말한다" 를 모태로 ''기독교의 사랑'을 이야기 하기

hairyMES 2007. 12. 5.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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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배경사 마지막 날이라고 젊으신 우리 교수님께서
이번에 목사되었다고 장난스럽게 전도사들이 어딜 목사에게 댐비냐~?로 한바탕 웃음을 자아냈다.
마지막 수업이라고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해주셨다..
그  몇개의 이야기중 하나를 내가 한번 주변부를 돌며 풀이 해 볼까 한다.
(이 글은 작성중에 내가 전도 하고 싶은 친구들에게 보내게 되는 글로 수정이 되어 문맥이 살짝 이상할 수 있다. 참고하자.)

<성경은 상식을 얘기한다.>
나도 동의 한다. 기독교는 보편성의 종교이다. 우리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기독교 상식중에는 '내려놓음'의 오해가 있는것 같다. 요즘 내가 강조하고 다니는 기독교변증 발언 중에 하나는 기독교는 철저한 '사랑의 종교'라는 것이다.
오늘은 상식 수준에서의 '기독교의 사랑'을 풀어 볼까 한다.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뭘로 증명해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살아 숨쉬는 것과 내 주변에 있는 만물과 사람으로 대체 하면 안될까? 또는 존재로써?
사랑의 표현은 일방통행이 아니다.
아무리 누군가가 너를 사랑한다고 표현해도 자기 자신이 받아 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최소한 너에게는 사랑이 아니다. 하지만. 그 사랑 자체는 받아 들여 지지 않았다고 해서 소멸 되지 않는다. 사랑은 사랑인 것이다.
그러기에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못한다고 해서 사랑이 사랑이 아닌것이 아니고 존재하는것이 존재하지 않는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진리이다.
나는 믿는다.
바람이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처럼...
(몸으로 또는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으로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바람의 존재함을 알 수 있는것으로 대체한다. 하나님은 나는 느끼지 못할지라도 주변에 경험한 사람으로 간접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를 믿으면 착하게 살아야 하고 돈과 명예도 버려야 할꺼 같고 술도 못마시고 등등 규제가 많아 지는 것을 싫어 하고 교회 나가기를 두려워 하는 사람들은 교회의 법도와 교리라는 것에 알지 못하지만 미리 치를 떨 것이다.
하지만 교회에서의 행위들을 교리적인 법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사랑으로 이해 한다면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요즘 유행하는 내려놓음 이란 말만 보아도 우리의 모든 욕심을 내려 놓고 싶지 않은데 굳이 내려놓아야만 하는듯한 느낌이 들 수 있는 오해의 표현일 수 있지 않나?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으면 하나님이 채워주신다는 그런 생각이다.(길어질 위험이 있기에 짧게 끊는다.)
그런데 내려놓음을 타이틀에 걸지 않고 사랑을 타이틀로 건다면 내려놓음이라는 단어까지 걸고 넘어지지 않아도 우리는 사랑의 반응(예수에 대한, 하나님에 대한, 이웃에 대한 등등)의 상식안에서 내려놓음이라든지 헌신이라든지 등을 경험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의 반응이란. 교감이다. 환언하면 사랑의 반응은 타인과 하는 것이 되는것이다.(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혼자 할 수 있겠지만....그건 혼자가 되면 하라.)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는데 우리의 반응또한 사랑이라면.. 내려놓을 필요도.. 헌신할 필요도 없게 된다. 그냥 하나님을 사랑하면 저절로 우리가 표현하는 것들이 내려놓음과 헌신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상식 수준에서 말하는 것이다.
사랑한다면... 잘 해주고 싶은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사랑한다면... 내가 좀 힘들고 어려워도 그 사람을 위해서 수고할 수 있지 않은가?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잘 될 수 있다면 내가 고통 받아도 괜찮지 않은가?
사랑한다면...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도 그사람에게 줄 수 있지 않겠는가?
정말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오해속에서 구출 하고 싶지 아니한가?
정말 사랑한다면... 나를 통해서 그 사람을 보여 줄 수 있다면 그리 하지 않겠는가?
정말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들 까지도 사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런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한다면.. 행복하지 않겠는가?

인간은 끝없이 행복을 추구한다. 생각해 보라.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추구 했던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결국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달려 왔을 것이다.(성공과 쾌락과 재미도 HAPPY 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것은 온전한 사랑은..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슨 뜻이냐고 한다면 이제껏 살아 오면서 내가 했던 사랑의 기억을 보고 그것이 사랑의 종착역인양 "사랑 그것 별거 있냐?" 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라는 것이다.
온전한 사랑은 하나님이 하시는 사랑이다. 그것은 우리가 창조한 사랑, 우리안에서 나온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사랑을 표현 하는 것은 하나님으로 부터 나온 사랑에 대한 반응이여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온전한 사랑을 단독으로 품을 수 없는가에 대한 답변은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 했다는 것으로 답변 하고 싶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모든류의 사랑으로서 사랑의 시초는 하나님이며 가장 온전한 사랑의 반응이라면 그 사랑 또한 지금까지 우리가 단독으로(상처많은, 신학적으로는 죄를 품은) 품었던 사랑과 다른 사랑이 라는 것이다.)

기독교는 사랑에 반응하는 종교로 본다.
어느 율법자가 예수께 율법중에 어느 계명이 가장 큰가를 물어 봤을때 예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가장 크고 으뜸이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두계명은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강령이다"(마 22:34-40)라고 말씀 하셨다.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알게 되고 느낀다면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주를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주 예수께서 말한 대로 살면 된다.

끝으로 한번 집고 넘어가자.
성경에서 말하는 것들은 상식적이다. 우리가 대부분 이해 할 수 있는 것들이지 않은가?
물론 구약의 상황들 특히 여호와의 전쟁이나 여성의 지위 등을 걸고 넘어 갈 수 있겠으나 그런 것들은 그 당시의 사회상식이다. 지금의 이해관계에서 걸고 넘어지지 말자.(깊이 있게 얘기 해 줄 수도 있다.)
그리고 기독교는 상당히 현세적이다. 복음은 먼 미래를 얘기 하기 보다는 현재를 말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땅에서의 사랑의 반응을 요구한다.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다..
사랑한다면 믿을 수 있고 믿는다면 소망이 생긴다. 희망이 생긴다. 그 희망은 기분 좋은 것이다. 서로 행복해지는..

형제여
하나님의 사랑을 못 느낀다면 먼저 우리 서로 사랑하자.
서로를 통해서 하나님을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때가 되면 온전한 사랑을 알 수 있을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이미 받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기독교는 맹목적인 억압의 종교가 아니다.
성서를 바탕으로 한 기독교는 보편적인 상식의 선을 주장하는 사랑의 종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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