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2

그리스도교 신앙의 생생함

성경의 사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왠지 복음주의에서 말하는 와는 다른 의미의 가 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오늘 소개하는 이러한 문서는 예수그리스도의 잉태하심과 공생애,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사실임을 증언하고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고 난 뒤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음에도, 재림의 시기가 늦쳐지자, 사도들의 글은 정경이 되고 속사도들의 글들은 초대교회의 권장글로써 사실들을 증언을 해주고 있다. 사도바울과 유사한 필체를 갖고 있는 안디옥 대교구의 감독 이그나티우스는 순교의 길 모퉁이에서 가현설에 대항한 하나의 문장을 남기고 있다. 오늘날에도 자신들은 성경적이라고 말을 하면서 십자가를 설교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야기나 하고 있는 그들에게도 이 글은 무엇이 그리스도를 믿는 것인지를 에누리 없이 확언해..

thought 2010.08.06

인생을 달콤한 꿈에 비유하다.

※본 글은 기독교적세계관을 갖고 작성한 글이므로 감정적인 종교논쟁은 가급적 피하고자 합니다. 인생을 달콤한 꿈에 비유하다. 주기도문에 보면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라는 영적전투에 대한 대목이 나온다. 칼빈주의의 하나님의 주권을 너무 강조하다보면 난관에 부딧치게 되는것들이 있는데 그것 중 한가지는 바로 의 존재이다. 어거스틴은 “악은 선의 결핍”이라고 말했다. 즉, 악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은 아니지만,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창조물인 선이 결핍되어 악성향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짚어야 할 부분이 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아주 선하신분이시고, 모르는 것이 전혀 없으신 분이시다. 그런데 그런분이 자신의 창조물이 타락할 것을 알고 계셨지 않으셨을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을 설명할때, 인간의 타..

thought 2010.03.25

"할머니 이것은 행운의 상징이에요!"

어느 드라마를 보다가 손녀가 할머니에게 로 자신의 핸드폰 고리에 걸려 있던 어떤 장식품을 할머니의 가방에 매달며 말했다. "할머니 이것은 제가 아끼는 건데요. 할머니께 드릴께요. 행운의 상징이에요." 할머니는 아이를 바라보며 미소로 답했다. 만약 내가 할머니라면 어떻게 반응 할 것인가? 나 또한 그 아이의 행운의 상징을 기꺼이 받을 것이고, 가방에 매달고 다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 물건은 나의 손녀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초점은 그 물건에 두는 것이 아니라, 분명 그 아이의 마음에 초점을 둬야 할 것이다. 나는 이 작은 에피소드를 통해서 순간 우상숭배의 범위를 따져보았다. 기독교에서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말에 대해서 우리는 어느부분까지 우상숭배인가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하고 있다. 여기서는 깊이들어..

thought 2010.01.13

현실의 기도

예레미야서 29:4-9 4 ○"나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예루살렘에서 바빌로니아로 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말한다. 5 너희는 그 곳에 집을 짓고 정착하여라. 과수원도 만들고 그 열매도 따 먹어라. 6 너희는 장가를 들어서 아들딸을 낳고, 너희 아들들도 장가를 보내고 너희 딸들도 시집을 보내어, 그들도 아들딸을 낳도록 하여라. 너희가 그 곳에서 번성하여, 줄어들지 않게 하여라. 7 또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이 평안을 누리도록 노력하고, 그 성읍이 번영하도록 나 주에게 기도하여라. 그 성읍이 평안해야, 너희도 평안할 것이기 때문이다. 8 나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지금 너희 가운데 있는 예언자들에게 속지 말고, 점쟁이들에게도 속지..

thought 2010.01.04

하나님이 되지 않으려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되지 않으려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말할때... 너무 과도한 하나님의 사랑을 흉내내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가끔은 찔림을 당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서 왜 자기희생을 못하느냐?" 라며 신앙이 없는자의 정죄 아닌 정죄를 당할때 우리는 당황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 우리는... 이 아니다. 우리는 가 아니다.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구원을 또는 완성된 사랑을 행 할 수 없기에 십자가 사건이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같은 그리스도인을 정죄하기도 한다. 그들의 행동을 보며 그것은 그리스도인 답지 않은 행동임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저 사람의 상황과 환경과 시간속에서 나는 달리 선택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

thought 2010.01.04

준비해야 할 용기

비닐하우스에서의 재배된 꽃이 될 바에 세상에 밟히고 짖눌려버린 들꽃이 낫다. 용기는 비닐하우스에서 생성되지 않는다. 교회 밖을 봐라. 그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가? 그들의 거침에 나의 거룩함의 옷에 침이라도 튈까봐 조바심을 내고 있지는 않는가? 또는 고귀한 핍박에 용기있게 맞설 수 있는가? 교회 밖에 시선을 돌리면 소름돋는 생지옥을 목격하게 된다. 이건... 인간의 사고(思考)로 행할 수 있는 짓거리들이 아니다! 거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거기에 어떻게 맞설것인가? 그곳에서 어떻게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것인가? 나는... 교회안에서만의 성자 교회안에서만의 거룩함에 치가 떨린다. 솔직히 그만하면 됐다...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종교행위를 하며 사는 것이 아니다. 또한 성도안의 교제는 충전하는 역할만..

thought 2009.12.31

2009년 메모

2009년도는.. 매우 정신없이 보냈던 한 해였다. 특히.. 대회는.. 나의 전부였었다. 때문에. 정신없이 일하다보니 나의 생각은 멈췄었고, 메모 또한.. 그때 그때 하지 못해서 올해는 최저의 기록을 남겼다. 누누히 고백하지만, 인간의 바쁨은... 옳치 않다. 어제 대화 가운데 나온 이야기인데. 현대사회의 바쁨은. 사단의 전략인듯 하다. 바쁜이에게는.. 자기가 살아있음을 인식하지 못한다. 자기 안을 탐구할 여력이 없다. 선교회의 바쁨 또한 그렇다고 본다. 내가 일년동안 아주 열심히 일했는데. 일은.... 일이였을 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1. 23 현실을 외면한 이상만을 꿈꾸는 자는 어린아이와 같다 어린 아이는 순수하지만 아이의 영향력은 타인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데, 타인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게 하는데...

thought 2009.12.28

사랑을 변호하며

현실. 예전에 용어에 관해서 한참 공방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단어는 "대안"이라는 단어였다. 요지는 "우리 공동체는 대안이 되어야 한다" 라는 것이였고, 나는 "교회는 대안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서로 대안에 대한 단어의 의미와 해석을 조금 다르게 했기 때문에 논쟁이 되었던 것이고. 우리는 '비트겐슈타인'이 말하고 있는 언어의 혼란을 상기하며 하나의 에피소드로 넘겼다.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이라고 생각치 않아?" 나는 현실을 존중한다. 믿음이라는 카테고리를 들먹일때 때론 현실과 동떨어진 무엇인가를 요구할때 나의 생각은 항상 "그래서?"였다. 그리고 그 뒤는... 그래서 헌신뒤의 그의 모습은? 그런데.. 무엇이 현실이지? 현실과 반대되는 것이 무엇인데? 진리... 그리고 사랑 나는 사..

thought 2009.07.06

자유에 대한 균형

그는 내게 작정을 하고 말을 하였다. "내게 중요한 것은 자유에요" 이미 선을 그어 놓고 시작하는 느낌. 나도 그에게 말을 하였다. "내게 중요한 것은 그 자유에 대한 균형이에요" 요즘은 교리를 중시 여기는 곳에 자주 가고 있다. 그리고 항상 성령을 붙드심을 의지하는 곳에 출근한다. 예정과 선택을 얘기할때 선택은 인간이 한다고 말하는 곳에 있다. 뭐.. 다 중요하다. 그리고 어느것만 맞다고 말하기 곤란하다. 요즘은 "참.. 인간은 한쪽으로 결정 내리기 좋아 한다"라는 생각이 든다. 뭐 이와 비슷한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 것 같아서 길게는 안적지만.. 인간은 "있으면서도 없는 것"에 대해서 단번에 설명하지도, 표현하지도, 생각하지도 못한다. 그게 인간의 한계이다. 천국을 말할때 우리가 알다시피 "이미"와 ..

thought 2009.05.16

wait는 확실한 기도응답이다.

기도의 응답은 Yes, No, Wait로 세가지가 있다는 얘기를 우리는 자주 말하고,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아니 어쩌면 많은 것을 "놓쳐" 해석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놓쳐버렸다고 표현하는 것은 다름아닌 wait의 기도응답이다. wait는 단어가 다르듯이 분명 No가 아니다. 너와 내가 응답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wait을 No로 쉽게 단정지어 버린적은 없는지.. 중요한 기도응답을 우린 너무 자기식으로만 확실하게 응답을 들으려고 했던 것 같다. 기다림의 수고와 인내와 마지막의 환희의 순간은 쉽게 얻어 지는 것은 아닌듯.... 그래. 기다림은 무척 어렵다. 그래서 우리의 연약함은 자꾸 우리에게 말한다. "아닌것 같아" wait가 Yes와 No 만큼 확실하다는 것을 잊..

thought 2009.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