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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참 아웃사이더다.

hairyMES 2008. 7. 17. 23:01

오늘은 사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외로웠다.
꼭 이런날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싶을 정도로..

난 남들이 봤을때 시니컬해 보이기도 하겠지만 밝은편으로 본다 생각한다. 즉 별문제 없어 보이는 사람이랄까?
하지만 난 안으로 곪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사람이다.

전주에 리더모임을 하면서 조원들이 조장에게 선물하는 얘기가 나왔다. 난 선물에 대해서 별 개념이 없었다. 원래 잘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기에.. 그런데 알고보니 2년을 넘게 리더를 서면서 6번정도 리더를 선것 같은데. 조원들에게는 선물을 한번도 받지 못했다.. 나 또한 티나게 준게 없으니 정말 별관심이 없었는데..
이런... 그동안 나 빼고 모두 받은 모양이다. 왠지 선물 하나로 난 실패한 조장인것 같았다. 기분이 정말 안좋와 졌고 내게 선물을 받았냐고 묻는 목사님에게 "단 한번도 받은 적이 없다." 라고 말하고 말았다.
이건 내 순간적인 감정을 완전히 노출해 버린격이였고 말하고 난뒤 후회했다.

리더장도 그 전에 내려놨다. 난 알고 있었다. 더이상 리더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곤 난 통보를 했다.
"나의 결정은 공동체를 위함이다."
모임후의 리더들에게 수고했노라는 문자는 진심으로 고마웠지만 난 잘 하지 못했다.
특히 목사님과의 관계에서..
아마 6개월 동안 사적인 통화는 단 한번도 없었을 것이다.
우린 그런 관계였다.
목사님은 내가 더 한다고 했더라도 갈아치우고 싶어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았고 나의 결정은 우릴 편하게 해 줄 것이다.
이번 텀이 나의 신용산의 마지막이고 마지막을 리더로 채우는것이 나의 몫이였다.
공동체를 위해서.
공동체를 위해서 1년전에 1년을 연장했다. 후회하지 말자.

목사님이 기도제목을 나누자고 했다.
난 나누고 싶지 않다고 했고, 반항의 대가로 단독으로 기도제목을 나눠야 했다.
그것은 니까짓게 뭔데 기도 제목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이 자리에서 나누지 않겠냐? 라는 의도의 추궁이였다.
난 얼굴에 나타날 정도로 흥분했지만 곧 나의 비밀스런 사연을 까발렸다.
물론 빙산의 일각이였지만 술술 내뱃었고, 곧 이야기는 1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목사님은 애써 내게 미안해 했고 난 줍지 못할 내 사정을 무방비로 노출시켰다.
이것을 갖고 기도하자는 목사님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어떻할껀데?

중보기도는... 타인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본연의 임무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입으로 담으면서 나의 기도처럼 중보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의 공감대가 형성된 뒤에 가능하다고 난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과연 얼마나 내가 그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을까? 자문하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기도를 무슨 주문처럼 생각하는게 아닌가 모르겠다.
난 자리를 봐가면서 내 기도제목을 말하고 싶었다.
무의미한 입술의 싸구려 기도에 내 기도제목을 말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난 그렇게 또 아웃사이더가 되었다.

아이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나를 공동체에서 나타내지 않으려 의도적으로 숨겨왔다.
공동체에서 내가 보일것 같으면 나를 숨기려 노력했다는 말이다.
타의 모범이 되지 않으려 했다.
누구에게 칭찬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게는 칭찬은 독이였다.
그냥 나는 그대로만 보이려 했던것 같다.
때론 나약한 인간, 때론 상당히 거만한 인간, 때론 믿음의 선봉장, 때론 무모한 믿음, 때론 이성적 사고.
이건 내가 보는 '나'이고, 아버지 앞에서의 표현적 '나'일뿐이다.
여기에 타인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았다. 타인은 내가 품어야 할 대상일 뿐이지 그들로 하여금 나의 존재적인 증명의 도구로 삼지 않았다. 이 말에도 설명이 필요하지만.. 어찌되었든...
난 그리스도인이려 노력한다.
그리스도인은 조건 없이 배푼다.
그리스도인은 타인을 위해 살지만 그들로 평가 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평가를 위해서 살지 않는다.

요즘은 믿음이 필요할 때이다.
바보같은 결정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사고로 완전 밑지는 장사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단한^^;' 믿음이 필요하다.
이러한 싸움에 많이 외로움을 느낀다.
솔직히 주변에 나와 같은 주류의 신앙을 공유할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다.
난 남들이 말하는 신앙심이 좋지 못하다. 그건 나도 알고 내 주변의 사람들도 알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주님을 붙들지 않고는 주저 앉고 말것이다.
내가 이리 외롭게 된 이유는 내가 그동안 너무 바뻤기 때문이다.
바쁘다는 것은 여유가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바쁘다고 해서 다른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렇게 난 또 아웃사이더가 되어 버렸다.

신용산에서 아웃사이더가 몇 있다. 그들에게 아웃사이더가 된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들의 마음에 신용산이 있다면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겠지. 나 또한 너무 외로워서 오늘은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 생각했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안에 있는 그들을 보자면 그들끼리의 즐거운 모습-그들 또한 같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성경구절로 무장하고 있다.-에 더 소외감을 느낀다.
신용산은 그들을 받아 들일 수 있을까?
공동체가 뭔가 변질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교회가 아닌 친목모임과 같다.
아니.. 어쩌면 안에 있는 애들도 밖으로 나가지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방편으로 친목모임성향을 띄게 된것은 아닐까?
하지만 교회의 본질은 아니다.
신앙의 본질을 바로 세우면 그러한 친목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지 모여서 무의미한 노가리나 까고 있을 시간이 있을까?
그런데 나는 왜 거기 있어 볼려고 노력했던가?
외로웠다.... ㅠㅠ

세상이 점점 살기 힘들어 진다.
솔로몬의 말처럼 나 또한 선택권이 있다면 절대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인간으로 살기에 참으로 힘든 곳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은 하나님의 처음 지으신 원형의 사람을 말하고 싶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눈에 보이는 현실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지만 소망까지 저버리지는 않을련다.
그것이 너와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심을 받은 이유이다.
그리고 난 아직은 그리스도인으로 살려 노력할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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