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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자의 자세(예배자의 복장이 전심을 방해 할 수 있다.)

hairyMES 2008. 4. 8. 02:53

날이 점점 봄의 향을 뿜어 내고 있다.
이 글은 오늘 하교길에 전철 출구쪽에서 짧은치마의 아가씨를 보고 생각난 것인데, 우리 공동체에 올리고 싶은 생각이지만 그냥 블로그에만 남기기로 했다.

참...블로그는 상관 없지만 공동체에 요즘 글을 많이 올리고 있는데, 내 글이 길어서 읽기 힘들고 읽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고, 또 솔직히 문체와 문구가 맘에 안들고 관심이 전혀 없어서 안 읽는 것도 같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그 사람은 원래 글을 즐겨 읽지 않는 사람일 것이라 생각든다.(요거 쓰는데 말이 꼬인것은 다.. 이유가 있다...) 때문에 이것은 내 블로그이고 하니 맘대로 쓸란다.

처음에 운을 띄운것과 같이 짧은 치마를 보고 왜 공동체와 연결이 된것일까? 또 봄이라는 전제는?
맞다 예배때 자매들의 치마가 짧아졌기 때문이다 .ㅋ
개인적으로 자매의 멋진 엉덩이를 좋아하기에 참으로 감사한 일이지만(?) 나 처럼 대놓고 멋지다는 선에서 끝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여기서 조금만 더 나가면 나도 모르게 음욕을 품게 된다 그렇다면 간음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난 인간의 의지와 절제를 그리 신뢰하지 않는다.)
이 문제는 두가지의 갈래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는 하나님께 향한 통칭적 예배로써, 또 하나는 공동체에서의 예배를 드리는 입장에서의 관점으로.

먼저 하나님께 향한 통칭적 예배로써의 생각을 해보자.
인간이 멋을 부린 다는 것을 문화적인 입장과 향유적인 입장에서 나도 괜찮다고 생각은 한다. 때문에 멋지고 이쁘게 치장을 하는 것은 자신의 취향에 맞게 하고 다녀도 무방하다. 아니, 권장할만 하다.
하지만 예배자의 입장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고 본다. 예배자라는 것은 온전히 하나님께로만 향해야 하는 신분이며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과감히 제거 할 수 있는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것을 축소해서 본다면 예배를 드리는 그때에만 적용되겠고, 확대한다면 개신교의 교회는 건물개념이 아닌 성도자신이고 예배는 시간마춰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삶이 예배이니 성도는 항상 예배속에서 사는 것이 된다.
예배자라는 것은 예배를 드리는 모두를 통칭한다고 생각한다. 인도자, 성가대, 성도 모두를 뜻한다. 성도는 본인 자신이 교회이자 삶이 예배인 예배자인 것이다. 이것을 또 확대하면 만인제사장이라는 설까지 나온다.
자... 넓게 해석했을때는 예배자의 자세가 어때야 할지는 답이 나온다. 구약을 참고 하자.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동일한 분이 아닌가? 이 개념을 갖고 좁게 해석해 보자. 좁게 해석한다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때 자세와 태도등을 볼 수 있겠다.
인간이 멋을 부린다는 것은 자기의 만족과 타인을 의식해서 하는 행위임은 틀림이 없다. 그 행위 자체로는 인간에게 해가 될 것은 없다고 위에 언급했다. 하지만 예배자로서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구약의 제사장은 제사를 지내기 전에 목욕제개와 복장을 입을때도 철저히 예배자로써의 공인된 복장만 입었다. 속옷을 입고 예배를 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예배자로 설 수 있는 권한을 주셨다고 해서 예배자로써의 자세조차 인간을 의식한 복장 또는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 않은 복장을 허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예배자로써의 복장은 그럼 어떤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것이다. 이 문제는 아래에서 자연히 답이 나올것이니 넘어가고 또하나의 관점인 공동체에서 예배를 드리는 입장에서의 관점으로 들어가보기로 하자.

예배를 드리는 입장은 온 정성을 다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온맘과 정성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예배를 위해서 과감히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배를 좁게 해석했을때 예배자는 예배를 이끌어가는 인도자이다. 인도자는 예배에 함께하는 성도들을 온전히 하나님께로만 향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예배자의 말과 행동등이 온전히 예배로 향하게 할 수 없게 만들수도 있음을 간과 할 수 없다. 오늘 얘기 하고 있는 복장이 그러한 경우이다.
자매인도자가 멋을 너무 부린 나머지 멋진 몸매를 들어냈다면 예배 중에 "와. 멋지다." 로 끝낼 형제가 얼마나 있겠는가? 본의 아니게 형제는 육적 감정을 다스려야 할 것이다. 자매의 노출은 의도하든 안하든 간에 형제를 테스트하는 것이다. 때문에 그러한 복장은 예배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
공동체에서 예배들 드리는 입장이란 다른 사람도 의식을 함으로써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데에만 열을 올리면 안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복장도 예배후에 약속때문에 그런 복장을 입었다는 하소연도 소용이 없다. 그 복장이 누구에게 향했는지에 대한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세상에 눈들은 많다. 그리고 예배는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에게만 향해야 하는 시간이다.
한가지 더 얘기 하자면 기도시간에도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가면서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을 귀머거리로 인식시킨다던가, 방언을 자랑삼아 함으로써 옆에서 기도하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한다던가 하는 것도 공동체에서 예배할때 타인을 신경쓰지 않는 행위이다. 그리스도인이 언제부터 타인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 생각하라고 했던가? 자신이 드리는 예배만 예배는 아니지 아니한가? 즉, 타인의 예배에 방해되는 행위는 절대 방관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정리를 하자면 복장은 분명히 좁게 해석하든 넓게 해석하든 하나님께로 향한 전심에 방해가 됨을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 보편적 관점의 옷은 필요이상의 자아추구형으로 바뀌여져 있다. 인간의 욕심은 하나님을 가리운다. 믿음은 행위를 동반함을 고백한다면 자신의 옷차림을 다시한번 돌아보자.
나는 예배자의 옷은 멋지게 꾸미는 것이 아닌 겸손과 검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손수 옷을 주셨을때 어땠을 까?도 생각해 보자.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멋진 디자이너 이시다. 충분히 멋진 옷을 주셨을 테지만 그 옷은 짐승의 피값이였으며 죄인인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때 어떤 마음과 행위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예수께서는 어떻게 사셨는가? 또 우리의 이웃은?
너무 보수적인 생각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분명하게 말해서 과도하게 부리는 멋은 자아숭배이다. 그 점만은 명심하자.


그나저나 우리 공동체는 우짜쓰까? ㅠㅠ 얘들아 정신 좀 차리자... 예배당은 멋부리러 오는 곳이 아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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