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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신앙의 생생함

hairyMES 2010. 8. 6. 15:12

성경의 사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왠지 복음주의에서 말하는 <설화>와는 다른 의미의 <신화>가 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오늘 소개하는 이러한 문서는 예수그리스도의 잉태하심과 공생애,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사실임을 증언하고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있고 난 뒤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음에도, 재림의 시기가 늦쳐지자, 사도들의 글은 정경이 되고 속사도들의 글들은 초대교회의 권장글로써 사실들을 증언을 해주고 있다.

 

사도바울과 유사한 필체를 갖고 있는 안디옥 대교구의 감독 이그나티우스는 순교의 길 모퉁이에서 가현설에 대항한 하나의 문장을 남기고 있다.

오늘날에도 자신들은 성경적이라고 말을 하면서 십자가를 설교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야기나 하고 있는 그들에게도 이 글은 무엇이 그리스도를 믿는 것인지를 에누리 없이 확언해주고 있다.

 

 

이그나티우스의 트랄레스 교인들에게 보내는 서신 중

 

9. 그러므로 만일 누구든지 그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설교를 한다면 그대들의 귀를 막을지어다. 그리스도는 다윗의 혈통이셨도다. 그분은 마리아의 아들이셨으며, 그분은 진실로 이 땅에 탄생하셔서 먹고 마셨도다. 그분은 진실로 본디오 빌라도의 때에 박해를 받으셨고, 실제로 십자가에 못박히셨으며 하늘과 땅의 모든 자들과 지하의 권세자들이 보는 앞에서 그 혼을 포기하셨도다. 또한 그의 아버지께서 그를 일으키심으로 그분은 진실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으나니, 그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믿는 우리도 그의 아버지께서 일으키실 것임은 그분을 떠나서 우리에게 참된 생명이 없음이로다.

 

10.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들, 즉 믿음이 없는 어떤 자들은 주장하기를 그분의 고난은 진실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사실은 그들 자신 가운데 진실된 것이 전혀 없으면서도).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어찌 내가 지금 죄수로 있겠는가? 왜 내가 사자와 싸우기를 간구하겠는가? 만일 그렇다면 나는 헛되이 나의 생명을 버리고 있으며, 내가 이제까지 주께 대하여 말한 모든 것은 거짓이로다.

 

11. 그대들의 참된 생명을 위하여 이런 자들로부터 피하라. 그들은 극약의 열매를 가진 식물들이니, 한 번 그것을 맛보면 급속도로 죽음에 이르느니라. 그들은 하나도 아버지께서 심으신 것이 아니라, 만일 그들이 그렇다면 그들은 십자가의 참된 가지들을 위하여 즉시로 알려졌을 것이며, 그들의 열매에 전혀 부패함이 없었을 것이로다.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분은 그의 고난을 통하여 그 사진의 몸의 부분들인 그대들을 자신에게로 부르신다. 어떤 지체들이 없이 머리 하나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나니,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약속은 일치에 대한 약속이라. 그것은 또한 그분 자신에게도 본질적 요소가 됨이로다.

- 초대교회의 신앙문서(기독교문사)

 

 

교회의 전통.

그것은 어떤 예식만을 얘기 하고 있지 않다.

여기에서 믿음의 전통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믿는것. 사실 우리는 성경 하나만을 믿고 있는데, 그 믿음의 줄기 줄기에 이러한 글들이 있었으며 무수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의 증언이 있었기에 우리의 순수한 신앙, 믿음이 그 맥을 유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성경 하나만으로 집중되지만, 시간이 너무나 오래 되었기 때문에 정경 이외에 그것을 증언해 주는 문서는 정말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속사도들의 글들은 너무나 생생하다 못해서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해준다.

오늘날 미지근한,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는 믿음에 익숙해진 우리들 앞에, 순교의 길을 가고 있는 이들의 증언은

신앙이란 취미가 아님을 확실히 말해주고 있다.

취미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지는 않으니깐,

 

우리가 믿는 믿음은 역사적 사실임을, 그리고 그 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태초에 이른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마지막까지 다루고 있다는 것.

그냥 단순히 믿는 것이 아닌 우리의 신앙.

좀 더 진실하게 살아가길 원하면서.

사소한 것에 집중하기 보다는

좀 더 이그나티우스가 표현하는 "고차적이고 천상적인 주제들"을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이 머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닌 <현실>임을 안다는것.

 

성경과 인간이,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맥을 함께 하는 것.

그것이 현실, 지금 이때. 그것을 타고 있는 것.

이것이 진실된 기독교의 신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