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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에 대한 균형

hairyMES 2009. 5. 16. 01:14


그는 내게 작정을 하고 말을 하였다.
"내게 중요한 것은 자유에요"
이미 선을 그어 놓고 시작하는 느낌.

나도 그에게 말을 하였다.
"내게 중요한 것은 그 자유에 대한 균형이에요"




요즘은 교리를 중시 여기는 곳에 자주 가고 있다.
그리고 항상 성령을 붙드심을 의지하는 곳에 출근한다.
예정과 선택을 얘기할때 선택은 인간이 한다고 말하는 곳에 있다.

뭐.. 다 중요하다.
그리고 어느것만 맞다고 말하기 곤란하다.

요즘은 "참.. 인간은 한쪽으로 결정 내리기 좋아 한다"라는 생각이 든다.
뭐 이와 비슷한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 것 같아서 길게는 안적지만..
인간은 "있으면서도 없는 것"에 대해서 단번에 설명하지도, 표현하지도, 생각하지도 못한다.
그게 인간의 한계이다.

천국을 말할때 우리가 알다시피 "이미"와 "아직"이라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배운다.
또 그렇게 알고 있다.
난 천국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지상의 천국을 더 많이 생각한다.
왜냐...?
난 지상에 있으니까.

소위 종말론자들은 지상을 도외시하기 쉬운데 그들은 철저히 틀렸다.
당신들이 믿는 그리스도는 지상에 오셨다.
그리스도가 지상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지상의 존재의 중요성은 판명이 난 것이다.
또.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천국에 대해서 관심이 적은 사람이 많다.
천국에 대해서 감이 전혀 안잡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천국은 소설속에 이야기 정도로 머나먼 전래동화화 시키기 일수다.
그들에게는 현실이 중요하다.
오늘날에 그리스도인.
그들에게 종말은 사회적이다.

극단적이다.
왜들 한쪽으로 치우치려 하는 것일까?
아니다. 아니야..
교리는 왜 배우는 것일까? 그들에게 체험은 무엇일까?
은사주의자들은 성경을 얼마나 파고들까?
한글성경만 보며 똑똑한 신앙인들이 원서에서 연구해 놓은 주석서를 왜 무시하며 멀리하는 것일까?
성경에는 분명히 보여지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을 나타내어 보이고 있다.
그분은 때론 감정을 사용하고, 때론 이성을 사용하신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때 만드신 모든 것을 이용하여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자신에게 맞는 능력은 인정하고 맞지 않는 능력은 무시하는 것일까?
그리고 결국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이유를 설명하자면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함이 되는 것이다.
"나 구원 받았고, 넌 구원 못 받았지?"라며 자랑하기 위함이 아님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전에는 너무 놀아서 문제였는데.
지금은 너무 공부에 열중해서 문제구나... 물론 그들도 아는 것 같지만.
과거의 대단한 신앙인의 지표를 쫒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지식을 배움은 오늘을 위해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타인을 위해서인데..
곧 오늘 주님이 오실 수 있다는 종말론적 신앙을 위시한다면,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알고 있다면,
좀 더 균형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의 특권이 존재하지 않는가?

신앙인들은 고백한다.
진리안에 자유하다고.
하지만 아는가?
그 진리는 주님안이라는 것을.
주님안과 밖의 개념을 아느냐란 말이다.
또 사람들은 말한다.
구약에서 자신을 믿지 않는다고 몰살시키는 하나님이 너희가 믿는 사랑의 하나님이냐고.

전도를 하다가 내게 대들듯이 거세게 도전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이 말하는 바는 대부분 "다빈치코드"나 "만들어진 신"과 같은 치우친 사견들을 증거로 들이댄다.
그 얘기들을 듣고 있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즉 누군가 당신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모르는 사람이 누군가가 말하는 말만 듣고 당신에 대해서 확정을 지어버렸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판단이 아니겠는가?
누군가를 확실히 알려면 객관적인 평가가 있어야 한다.
그동안 그리스도교 밖에서 정보를 받아들였다면, 이번에는 그리스도안에서 정보를 받아 보는 것은 어떨까?
그전에 누군가를 까는 것이 즐겁기에 헐뜯는 정보에 대해서 공부하듯 탐구했다면
이번에도 누군가를 보호하듯이 변호사의 눈으로 파해쳐 보는 것은 어떨까?
수십명의 사람이 수백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수천년을 믿어왔고 신기하게도 하나의 동일한 이야기를 써내려온 한권의 책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쉬운일은 아니겠지만,
진리에 관심이 있고,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혹시라도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면 혹시 모르니 한번 도전해 보는 것도
내가 알고 있는 "지상에서 진리를 선택해 버리는 자유"에 도달하는 "그나마 이성적으로 균형잡힌 방법"이라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고백으로는 진리는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알게되는 것이라 말해 주고 싶다.




"그래서?"

"나를 구속하지 말아요. 난 자유인이에요"


나는
날려보냈고,
그는
날아갔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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