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stian story

TR 본문과 킹제임스

hairyMES 2008. 12. 23. 21:35

개인적으론 성경 번역 역사와 여러 번역본에 관심이 많다.
책으로 가지고 있는 번역본은 한글은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 예수안에 출판), 개역개정판, 개역한글, 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공동번역 성서를 대조해 보면서 보고 있으며, 영문은 NIV, KJV, GNB,NASB를 그리고 교수께 사기당해 샀던 TBS 헬라신약을 갖고 있다.

한참은 킹제임스성경 때문에 이리저리 알아보고 한때 킹제임스가 가장 좋은 건가보다...하고 믿어보려 했었지만, 공부를 하고 나니 번역본은 번역본일뿐임을 알게 되었다.. 킹제임스버전만 옳고 나머지는 변개된 성경이라는 데에서 갸우뚱 했었는데, 지금은 그러한 주장은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고 과도한 주장이라 말하고 싶다.
성경에 대해서 알아보다 보니 주님께서 원본 문서들을 하나도 남김 없이 없애 버리신 지혜는 우리가 찬양할 만한 것임을 알게되었다ㅋ
뭔가 하나만 잡았다 하면 신격화 시켜버리는 인간의 아둔함의 극치는 이번 '성경번역본 주장사건'뿐 아니라 주변을 둘러 보면 확연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 충분히 중심 잡힌 글이 있으니 번역본에 관한 좋은 자료가 될 것이고 더 궁금한 사람은 <킹 제임스 버전 성경의 오류 (카슨, D. A.)>과 같은 소책자를 읽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출처: 네이버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김 경 열 목사(총신대학 Ph.D. 구약신학 전공)

 

1. 들어가는 말

 

보수적 입장의 기독교인들은 공통적으로 성경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이라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정확무오한 성경이라는 것이 사본이나 번역서가 아닌, 처음 기록된 원본이라는 것에 합의를 보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원본으로 인정된 자료는 하나도 없다.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원본은 발견될 수 없을 것이고 또 설사 발견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진짜 원본인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결론도 내릴 수 없는 채 논쟁거리로 남고 말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전부터 한국교회에 킹 제임스 성경(King James Version, 이하 KJV)이라는 어떤 특정한 영어성경만이 원본과 동일한 가치를 가진 정확무오한 성경이고 나머지는 모두 사탄에 의해 변개된 잘못된 오류투성이의 성경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 주장을 하는 단체는 '말씀보존 학회'와 거기서 갈려 나온 '안티오크'이다. 그들에 따르면, 오직 KJV만이 일점일획의 가감 없이 하나님의 말씀이 보존된 유일한 진짜 성경이요, 그 모체가 된 공인본문(Textus Receptus, 이하 TR)만이 유일한 권위를 지닌 헬라어 성경이므로 다른 것은 폐기처분해야할 훼손된 성경이다. 그들은 열렬한 각종 문서와 선전지를 통한 활동을 통해 집요하게 자신들의 주장을 전파하고 있으며 영문판 KJV을 번역한 한글판 KJV을 이미 시중의 기독서점에 내놓고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주장은 기존의 개역성경을 비롯한 영어성경에 익숙한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상당한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으며, 불안감을 조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이들의 주장에 우리가 우려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사용해 온 한글 개역성경 역시 변개된 사본들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성경이므로 폐기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KJV은 그들의 주장대로 어떠한 문제와 모순도 없는 완벽한 성경일까? 거기에 사용된 헬라어 사본들은 사본비평학의 잣대로 볼 때 신뢰할 만한 본문인가?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개역성경과 신약성경 헬라어 본문이 그들의 주장대로 실제로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가? 이러한 문제를 검토해 보는 것이 본 소고의 목적이다. 참고로 KJV을 둘러 싼 논쟁은 주로 신약성경 헬라어 사본에 관한 논쟁이므로, 이 글 역시 신약성경 헬라어 사본 논쟁에 초점을 맞추었음을 밝힌다.

 

2. KJV 옹호자들의 주장

우선 KJV 옹호자들의 주장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역사적으로 성경은 두 갈래로 전래되어 왔는데, 하나는 안디옥 계열로서 안디옥을 기점으로 소아시아와 지중해 연안으로 확산되어 그 후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독일과 영국 등지로 전해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알렉산드리아를 기점으로 시작되어 로마교회에 확산된 것이다. 이 중 안디옥 계열을 통해 하나님 말씀은 보존되어 왔고, 보존의 섭리는 TR을 거쳐 현재 KJV으로 이어져 왔다. 반면에 후자의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사본들은 모두 변개된 말씀들이다. 이집트는 성경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항하는 일을 일삼아 왔는데, 특별히 철학이 발달한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자연주의와 합리주의의 영향으로 성경이 크게 변개되었고, 이에 앞장선 사람들은 오리겐, 유세비우스, 제롬 등이었다. 현대의 번역성경들은 모두 이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사본을 따른 것이므로 현재 사람들은 사탄에 의해 변개된 성경을 보고 있는 셈이다.
KJV 옹호론자들에 따르면 이러한 성경변개의 현대의 선구자들은 현대 사본비평학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웨스트코트(Brook Foss Westcott)와 홀트(Fenton John Anthony Hort)이다. 그들은 인본주의적이고 과학주의적인 비평방법을 멋대로 성경사본연구에 사용하여 심각한 변개가 된 알렉산드리아 계통의 사본인 시내산 사본( )과 바틴칸 사본(B)을 때묻지 않고 본문이 잘 보존된 '중립사본'이라며 최고의 권위에 올려놓았다. 따라서 이들의 사본비평 방법론을 통해 만들어진 현재의 네슬-알란트(Netsle-Aland, 이하 NA)판과 연합성서공회(United Bible Societies, 이하 UBS)판 헬라어 성경은 모두 변개된 성경의 계보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번역된 오늘날의 대부분의 번역성경 역시 그렇다.
극단적 KJV 옹호자중 한 사람인 사무엘, C. 깁에 따르면,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한 시대를 풍미한 언어에 항상 보존해 왔다. 먼저,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유대인들에게 성경을 주셨고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원하는 사람은 유대교로 개종해야 했다. 그 이후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이 헬라어를 택하셨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그 당시 온 세상에서 가장 유력한 언어였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로마 제국으로 확산 된 후, 하나님께서는 이제 구약 성경과 신약성경을 세계에 공통된 언어로 합치셔야 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시의 로마 제국의 언어인 라틴어 번역(구 라틴 벌게이트)에 신구약의 모든 계시의 내용을 보존시키셨다. 그런데 또 세월이 흐르자 이제 세계의 언어는 영국의 세계 식민지화와 더불어 영어가 공통어가 되기 시작하였다. 영어는 전 세계를 식민지화한 영국과 그 뒤를 이은 미국을 통해 지구상의 구석구석까지 가장 강력한 국제 언어로 부각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제 라틴어 대신 영어를 선택하심으로써 거룩한 자신의 신구약 말씀을 가감없이 보존하시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성경에 접할 수 있는 길을 새롭게 마련해 주신 것이다.
이러한 KJV 옹호론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제 원본마저도 별 의미가 없고 전혀 중요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원본의 말씀이 일점일획의 가감이 없이 계속 전수되어 오다 지금의 KJV에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킹 제임스 옹호론자들에게 있어서 KJV은 전혀 개정할 필요 조차도 없는 완벽한 성경이며, 과격하게는 심지어 수많이 많은 고어(古語, archaic words)까지도 전혀 바꿀 필요가 없다. 다만 당시 KJV번역자들의 원고에서 벗어난 인쇄상의 오류만이 개정의 대상이 될 뿐이다.
얼핏 보기에 하나님의 말씀 보존의 섭리에 호소하는 그들의 주장은 매우 그럴 듯 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이 갖고 있는 주장들은 일종의 믿음내지는 신념에 근거한 것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토록 대단한 신념을 가지고 옹호하는 KJV은 도대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 졌을까?

 

3. KJV의 탄생과정과 TR 권위의 붕괴

1) KJV의 탄생과정

본래 전통을 중시하여 라틴어 성경만을 고집한 로마 카톨릭 교회는 너무도 오랫동안 영어 성경을 비롯한 자국어 성경을 금지해 왔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발흥과 더불어 점차 영어를 비롯한 번역성경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윌리암 틴데일(1494-1536)의 번역본은 후대의 영어 성경 번역본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틴데일 성경을 기초로 나중에 영국에서 큰 성경(the Great Bible,1539)이 등장했다. 이 성경은 그 크기로 인해 이런 이름을 얻게 되었는데, 바로 이것이 흠정역(the Authorized Version)이라 불리는 최초의 성경이었다. 이와같이 오늘날 흔히 사용하는 흠정역(the Authorized Version)이란 말 그대로 '권위가 부여된 역본'이란 의미로서 영국에서 최초로 사용된 용어였던 것이다. 그 후 영국 국교회는 역시 틴데일 성경을 기초로 감독성경(the Bishop's Bible, 1568)을 만들었고 이것이 영국 흠정역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감독성경을 이어서 등장한 흠정역이 바로 KJV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을 이어 왕이 된 제임스 1세는 교회당국의 건의에 따라 모든 교회에서 예배 시에 사용할 원문에 충실한 새로운 번역본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 번역작업에는 영국에서 당대에 손꼽히는 50여명의 학자들이 임명되었다. 그 중 신약성경을 맡은 그룹이 사용한 헬라어 본문은 나중에 TR로 발전된 에라스무스의 본문이었다. 그러므로 KJV 논쟁이 사실상 TR 가치에 대한 논쟁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들 6개 팀은 약 4년 동안의 작업 끝에 초역을 완성시켰고, 드디어 1611년에 초판이 발행되었다. 이 성경은 발간 의도와는 달리 처음에 즉각적인 호응을 얻지 못했고, 거의 반세기후에 애독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반세기 동안(1611-1769)에 적어도 다섯 차례의 개정 작업이 있었다. 따라서 1611년에 출판된 초판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KJV과 많은 면에서 차이가 있다.
이렇게 탄생된 KJV는 근 200년 동안 교회의 표준성경으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KJV의 확고한 권위와 가치는 현대 사본비평학의 장을 열며, TR의 권위를 일거에 무너뜨린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출현으로 일 순간에 흔들리게 된 것이다.

 

2) KJV에 사용된 사본들과 TR의 탄생과정

웨스트코트와 홀트는 왜 TR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을까? 그들의 주장과 달리 과연 TR은 믿을 만한 본문이 될 수 있는가? 이를 위해 먼저 우리는 TR 편집과정에 어떤 사본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인쇄술의 발달과 더불어 최초로 등장한 헬라어 신약성경 인쇄본은 콤플루텐시아 대역서였다. 그 후 이 인쇄본을 능가하는 것을 만들려는 한 인쇄업자의 종용으로 에라스무스가 또 다른 헬라어 신약성경 편집을 맡게 되었다. 에라스무스는 약 10개월에 걸쳐 이 작업을 완성하였다. 에라스무스의 인쇄본은 아주 허술한 데가 많이 있었다. 에라스무스의 자신은 1516년에 쓴 어느 편지에서 "편집이라기보다는 급조된 것"이라고까지 말하였다. 주로 12세기 필사본인 두 개의 바젤(Basel)판 소문자 사본들을 사용한 것이고 4개의 다른 소문자 사본들은 아주 가끔씩만 사용되었다. 특히 에라스무스는 요한계시록은 오직 하나의 사본만을 가고 있었는데 그나마 22:16에서 끊어진 것이다. 없어진 구절들은 그가 구 라틴 불게이트 성경에서 다시 헬라어로, 많은 실수를 해 가면서 번역하였다. 그러한 방법으로 몇몇의 곳(예를 들어, 사도행전 9:6에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회개할 때 물은 질문)에서 에라스무스는 본문을 재생시켜 집어넣었는데, 이로 인하여 에라스무스 편집본에는 헬라어 필사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본문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이 TR과 KJV에 그대로 존속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요일 5:7-8은 콤플루텐시아 대역서 편찬자를 비롯한 당시의 비판가들의 공격에 굴복하여 에라스무스 자신이 삽입하였다. 아마도 대적가들은 날조된 본문을 그에게 제시한 것으로 믿어진다. 에라스무스 자신도 이 구절에 대한 자신의 의심을 나타낸 채 삽입시켰다. 이에 대한 의혹은 에라스무스 시대 이후에 발견된 수천 개의 신약 헬라어 사본 가운데 단 3개만이 이 가짜 구절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밝혀져 더욱 신빙성을 갖는다.
네번의 계속된 개정을 통해서 에라스무스는 본문을 약간씩 고쳤지만, 그의 본문의 기초는 철저하게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후, 16세기경의 신약성서 인쇄본들은 에라스무스 본문을 따라 크고 작은 수정을 가한 채 발행되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스테파누스(Stephanus)의 인쇄본이다. 스테파누스는 에라스무스보다 약간 많은 14가지 정도의 필사본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는 베자 사본(Codex Bezae)가 포함되어 있었다. 스테파누스는 이 사본들을 사용하여 1522년판 에라스무스 편집본을 약간 수정하였다. 그의 인쇄본은 모두 네 판(1546, 1549, 1550, 1551)이 나왔다. 이중 셋째 판인 1550년 판은 개정된 에라스무스 판과 매우 가깝다. 이 1550년 판이 영국의 공인본문이 되어 킹 제임스 번역본의 신약 기초로 사용되었다. 그 후 죤 칼빈의 후계자인 데오도르 베자(Theodore Beza)는 1565년과 1604년 사이에 아홉 번의 헬라어 신약성경 출판을 하였는데, 그는 스테파누스의 연구 결과를 대부분 사용하여 스테파누스의 본문을 기정 사실화하는데 공헌했다. 에라스무스판을 사실상 그대로 간직한 스테파누스 본문이 영국의 공인 본문이 되어 KJV 기초가 된 것도 베자의 역할 때문이다.
그 후 1624년과 1674년 사이에 독일에서 몇 차례 헬라어 신약성경이 출판되었다. 이 인쇄본들은 주로 베자가 만든 1565년 판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인쇄업자들은 특별히 1633년 판 서문에 이렇게 썼다: 여러분들은 이제 모두가 인정하는 본문(Received Text)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에는 잘못되었거나 우리가 수정할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 본문은 모두가 다 인정하는 본문이 아니었고 이 주장을 입증할 만한 근거도 없었다. 이것은 명백히 그 성경 인쇄본을 판매하기 위한 상업적 선전 구호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곧 그 주장을 사실로 믿게 되었다. 공인 본문(Received Text, 혹은 Textus Receptus)라는 말은 이 주장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본문은 이 주장을 근거로 200년 동안 공인 본문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이 기간동안 본문의 변경이란 거의 불가능하였다. 결국 저급한 에라스무스의 본문은 스테파누스를 이어 마침내 TR이 되었고, 이러한 본문을 토대로 1611년에 KJV이 번역된 것이다. 그러므로 KJV은 사본학적으로는 명백히 그 가치가 현저하게 떨어진 헬라어 사본을 사용한 역본이 되는 것이다.

 

3) KJV과 TR 권위의 붕괴

앞서 말했듯이, 이러한 문제를 갖고 있던 KJV은 오랫동안 권위를 누리고 있었으나 몇 가지 이유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KJV에 대한 재평가와 더불어 이제 새로운 영어성경의 필요성이 필연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그 동안 신약성경 사본연구에 많은 발전이 병행되었다. 그래서 새롭고 더 오래되고 더 좋은 필사본들이 많이 발견되었고 이 필사본들을 연구한 결과 KJV의 기초가 된 TR본문은 신약성경의 최상의 본문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둘째, 이런 사본학의 발달과 더불어 헬라어에 대한 이해 역시 1611년 당시 보다 훨씬 깊어져 새로운 번역이 필요하게 되었다. 셋째,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어 자체가 세월이 지나면서 변화를 겪어 성경을 개역해야 한다는 운동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사본학적 가치가 떨어진 것으로 평가된 TR은 이제 그 시대가 점점 막을 내리게 되었고, 그에 따라 KJV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독점적인 권위의 자리를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특별히 사본의 가치에 대한 평가와 관련하여, TR의 권위를 완전히 붕괴시킨 장본인들은 바로 웨스트코트와 홀트이다. 그들은 웨스트코트와 홀트는 스승 라흐만이 개발한 비평원칙을 토대로 더욱 엄밀한 방법론을 만들어 그 원칙을 본문들에 세심하게 적용하였다. 이들은 본문의 증거를 외증과 내증으로 나누는데, 외증은 특정 본문들에 대한 지지 사본들의 가치를 통해 그 본문들을 평가하는 것이고, 내증은 필사자들이 일반적으로 범한 오류의 유형을 찾아내 가장 덜 훼손된 본문을 가려내는 것이다. 본문 비평의 실제 연구 단계는 외증 작업을 먼저 한 후에, 내증작업을 하게 된다. 만일 어떤 특정 본문을 매우 가치있고 신뢰성있는 사본들이 지지하고 있으면, 그 본문은 우선적으로 채택이 된다. 이어서 본문은 내증 작업을 거치는데, 내증 연구 방법은 크게 네 가지 원칙을 가진다: 1) 다른 형태의 본문의 발생 원인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본문이 다른 본문에 우선한다. 2) 어려운 본문이 평이한 본문에 우선한다. 3) 짧은 본문이 긴 본문에 우선한다. 4) 저자의 특색을 잘 드러내는 본문이 우선한다.
이들은 이 연구결과를 토대로 필사본들을 네 가지 계통으로 나눌 수 있었다. 그것은 서방, 알렉산드리아, 중립, 시리아(혹은, 비잔틴)본문이다. TR은 이 중에서 시리아 본문을 기초로 만든 것인데, 그것은 나머지 세 가지 본문의 혼합물이고 서방과 알렉산드리아는 상호간에 서로 혼합이 되었다. 따라서 웨스트코트와 홀트에 따르면 TR은 가장 심각한 혼합을 통해 크게 오염되고 손상된 사본들을 기초로 만들어진 것이고, 결국 TR을 통해 탄생된 KJV은 그 신빙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결론이 나온다. 반면에 이 네 가지 계통 중에 그 중 가장 중립적이고 신빙성 있는 본문은 중립사본, 즉 과 B사본이다. 이 사본들은 다른 계통들의 사본들과 혼합이 되지 않고 중립적 위치를 간직해 왔다 해서 중립사본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 사본들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헬라어 성경이 NA와 UBS판 인 것이다.
따라서 사본 비평학의 결과 신약성경본문 연구에 있어서, 현재까지 학계에서 원본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인정되는 신약성경 본문은 바로NA, UBS 판에 사용된 헬라어 본문이다. 우리가 보통 헬라어 성경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일컫는다. 이 두 헬라어 성경 편집본은 편집진(5인으로 구성)이 동일하기 때문에 그 본문내용은 동일하고 다만, 헬라어 구두점이나 단락 나눔, 비평도구 등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UBS판은 비평도구(apparatus)가 영어권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영어로 되어있고, 반면에 NA판은 기호가 많고 식별이 좀 더 어려우며, 각주 안의 설명이 라틴어로 되어있어 보통 사람이 사용하기엔 쉽지 않다. 현재 이 본문은 신약 사본학계의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으며, 또한 한글 개역성경을 포함한 현대의 대부분의 번역 성경은 이 본문에 근거하고 있다.

 

4. 웨스트코트와 홀트에 대한 비판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방법론이 항상 지지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처음 그들의 주장이 제기되었을 때 이미 존 버건(John W. Burgon, 1813-88)이 그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지만, 최근에 와서 그들이 주창한 사본들의 계통 수식 접근법에 대한 반발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홀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광범위한 본문들의 혼합과 교류가 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또한 그들의 내증 방법론 역시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기 때문에 중대한 잘못을 가져올 수 있다고 비판받고 있다. 덧붙여 웨스트코트와 홀트 이후 본문 이론이 거의 발전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반성이 나오고 있다. 특별히 중립본문( , B)이 원문에 가장 가깝다는 결론에 대해서 그 기준이 과학적이며 객관적이라기 보다는 주관적이었다는 비판이 종종 제기되고 있다.
또한 그들은 어떤 특정 본문에 대한 판단이 사실상 현대의 사본학계를 이끌고 있는 불과 몇 명의 핵심인물에 의존한다는 것과 그들을 비롯한 사본학계에서 일반적인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방법론 역시 너무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라 점을 문제 삼았다. 따라서 현재 통용되고 있는 NA와 UBS 본문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비록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지만, 이러한 비판의 움직임은 현재 크게 두 줄기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이론을 재평가하고 현대 사본학의 문제점을 꼬집되 차분하게 과학적 방법으로 비판하려고 노력하는 그룹들이다. 그들 역시 교회가 전통적으로 인정해 온 TR의 권위를 회복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TR이 많은 문제를 가진 점을 명백히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별도로 TR본문에 근접한 다수본문(Majority Text, 이하 MT)를 만들어 NA와 UBS본문에 대항하고 있다. 그들은 컴퓨터를 동원한 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하여 자료들을 검토하는 등 상당한 학문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주장의 핵심은 짧거나 어려운 본문보다는, 다수의 사본이 지지하고 있는 본문이 가장 신빙성이 있다는 것이다. 즉, 비록 후대의 사본들이라 해도 절대 다수가 특정본문을 지지하고 있으면 그것이 원문에 가까울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그들의 입장에선, 절대 다수의 사본들과 거의 일치를 보이고 있는 비잔틴 본문(혹은 시리아 본문: A, E, G, H, S, V, Y, 그리고 대개의 미나스쿨 사본들)이 가장 신뢰할 만한 본문이다. 그들은 이 본문을 중심으로 여러 사본들을 참고하여 MT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 MT는 TR과 세부적으로는 약간의 차이점이 보이지만 동일한 계열에 속한다. 이 MT를 구성하는 사본들이 후대의 것들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날씨가 건조해서 파피루스가 오늘날까지도 보존될 수 있는 이집트 지역과는 달리 MT 사본들이 회람되었던 지역은 사본들이 오래 보존될 수 없었기에 후대의 것들만이 남아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후대의 것이라 해서 가치가 떨어진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흐름은 MT마저 평가절하하면서 TR과 KJV만을 절대시 하는 부류이다. 이 글에서 문제삼고 있는 극단적 KJV 옹호론자들이 그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교회가 400여년 동안이나 사용해 온 KJV의 권위가 일거에 흔들리게 되자, 그에 대한 반동으로 주로 미국에서 일부 보수적 신앙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건전치 못한 KJV 옹호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런 운동이 드디어 몇 년 전에 한국에 까지 상륙하게 되었는데, 그들이 바로 <말씀보존학회>와 거기서 갈라져 나온 <안티오크>이다. 이들의 주장은 대체로 학적 기반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감정적이고, 독단적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이 KJV과 TR을 옹호하고 있는 점은 이해할 만 하지만, 그 외의 모든 다른 사본의 가치를 부정하고 심지어 사탄의 성경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더욱이 그들은 오늘날 모든 사본학 연구를 통해서도 알기 어려운 사본들의 전수 역사에 대해 어떤 근거도 없이 자의적이고, 믿음에 근거한 확정적 결론을 내리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지나치게 KJV만을 옹호한 결과 일종의 교조적 독단주의에 빠져 버리게 되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은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사생활까지 거론하면서, 그들이 신앙과 동떨어진 합리주의와 인본주의로 무장된 사람이며 도덕성마저 문제가 많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단정짓는다. 그래서 그들이 만들어 낸 NA와 UBS는 사탄의 성경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독단적인 모습은 동일하게 웨스트코트와 홀트를 비판하면서 MT와 TR을 지지하는 차분한 비판자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예를 들어, TR과 KJV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 중 하나인 고신 대학의 변종길 교수 역시 NA와 UBS 판을 비판하고 있지만, 이런 감정적 논증이 가져오는 위험성을 잘 꼬집고 있다. 변 교수는 KJV는 그들이 주장한 대로 아무런 흠이 없는 성경이 아니라, 분명한 오역들을 담고 있으며, 상당수의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오히려 KJV보다는 새 KJV(New KJV)가 보다 개선된 역본이라고 말하고 있다.

 

5. 그릇된 KJV 옹호론

우리는 이상에서 KJV 옹호자들의 논리들이 가지는 허구성의 일부를 살펴보았다. 그들이 옹호하는 TR은 에라스무스에 의해 조잡하게 만들어진 본문을 약간의 개정을 거쳤지만 사실상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곧 이어서 킹 제임스 번역의 모체가 되었다. 그러므로 KJV은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수많은 결함을 지닌 성경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KJV이 완전무결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어떻게 그것이 이런 결점 투성이의 TR의 한계를 뛰어 넘어 완벽한 성경이 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그 가운데 하나님의 보존의 섭리가 있었다고 주장하지만(번역영감 내지는 보존영감), 그들의 믿음은 어떤 타당한 근거도 없는 광신적이고 미신적인 것이라 할 수 밖에 없다.
번역이 영감되어 완벽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간섭하시면 가능하다고 주장하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 누구의 성경 번역과정에서 영감을 부여해 주시는가? 설사 그렇다 해도 그것을 누가 어떻게 판단하여 알 수 있는가? 번역의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말씀보존학회와 안티오크가 갈라서게 된 이유 중 하나는 한글 KJV을 번역하는 최초 과정에 의견차이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설사 그들이 말하는 KJV에 대한 번역 영감과 보존 영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KJV 자체가 여러 차례의 개정을 거듭하면서 수천군데의 변화가 발생했다는 점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전능하신 하나님이 처음 보존 작업에 실패하자 나중에 수차례의 개정작업을 하신 것일까? 이에 대해 그들은 분실된 KJV가 최초 출판되는 과정에서 흔히 있는 오자가 나온 것에 불과하지, 당시 영감받은 번역가들의 원본 KJV는 아무런 오류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확인해 볼 수 있는가? 설사 그렇다하더라도 왜 전능하신 하나님은 거듭된 수천군데의 출판의 실수를 막아주지 못하셨는가? 심지어 그들은 영어의 발전과 변천에 따른 옛문체와 단어들의 현대어로의 대체 필요성에 대하여 조차, 애써 원문 그대로를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약간의 개정을 가한 새 KJV(New KJV)조차도 그들에겐 배격의 대상이 된다. 그렇다면, 그들은 원본을 찾는 원문주의자들을 비판하면서, KJV 원문에 집착하는 또 다른 류의 원문주의자가 되는 모순을 범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만일 그들이 KJV만의 무오류성을 주장한다면, KJV를 한글로 번역하거나 그것을 읽는 일은 그만 두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번역 과정에 또 다시 하나님의 완전한 번역 영감이 주어지지 않는 한, 말씀은 조금이라도 변개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영문 KJV일점 일획의 무오성도 없음을 믿는 그들에게 번역 과정의 이러한 말씀의 변경은 엄청난 불경한 일이 아니란 말인가? 아니면 자신들은 무오하게 KJV를 한글로 번역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어떤 단체를 통해 그것이 보장되는가? 안티오크인가, 아니면 말씀보존학회인가? 이와같이 그들은 스스로 자가 당착에 빠진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그들은 현대의 사본비평학을 인본주의적 학문이라고 신랄히 비판하는데, 과연 하나님의 초자연적 섭리는 사본비평학을 배제하는가? 오늘날 많은 매우 보수적인 입장의 학자마저도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방법론을 지지하면서 이에 근거한 NA와 UBS판을 사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죠지 래드는 말하길 "350년 동안이나 널리 사용되어온 KJV이 TR에 기초를 둔 것이고 이 TR은 최근의 연구결과 매우 빈약한 텍스트일 뿐 아니라, 판본의 오류가 수 천개나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것은 신앙이나 학문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단순하고 객관적인 사실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죠지 래드가 말한 대로 학문적 수단이 성경에 사용된다고 해서 그것이 성경의 권위를 해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마치 정신병을 정신과적 치료로 접근하지 않고 무조건 귀신들림으로만 여기는 것과 같은 위험한 신앙에 불과하다. 우리는 학문적 수단을 맹신해선 안되지만, 그렇다고 학문적으로 검증된 객관적인 사실마저 외면해선 안될 것이다.
현재까지 TR본문을 둘러싼 논쟁은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전통을 서 있는 대다수의 학자들의 주장이 주도권을 잡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방법론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소수이긴 하지만, 꾸준히 그들의 방법론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우리는 귀기울일 줄 알아야만 한다. 솔직히 어느 누구도 현재로선 중립본문에 근거한 대다수의 학자들이 동의하는 NA와 UBS판이 더 신빙성이 있는지, 아니면 비잔틴본문에 근거한 TR과 MT가 더욱 믿을 만한지를 아직 완전히 확정지을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입장에서든지 그 작업은 구체적인 학문적 토대 위에서 이루어져야지 막연한 추론에 근거한 믿음의 문제로 풀어 나가선 안될 것이다. TR/MT 지지자들 입장에서 보면 NA/UBS 판은 일부분 첨가된 부분들도 있지만 주로 수천 군데의 삭제가 이루어진 변개된 성경이다. 그러나 반대로 NA/UBS 판 지지자들 입장에서 보면, TR/MT야말로 무수한 고의적, 혹은 비고의적 첨가와 수정이 이루어진 가장 가치가 떨어지는 성경이다. 하지만 여기서 매우 중요한 한가지 사실은 첨가든 삭제든 수정이든, KJV 옹호자들이 천지가 무너질 것 같이 여기는 구절들의 변경 중에 실상은 심각하고 치명적인 교리적 손상을 주거나 우리의 믿음의 기반을 해칠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20:28을 보면, TR은 "하나님의 교회"로 NA와 UBS 판은 "주님의 교회"로 기록하고 있다. 또 다른 예로써 TR과 KJV 옹호자들이 NA와 UBS 판이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한다는 명백한 증거로 제시하는 요한일서 5:7-8(특히 7절은 한글 개역과 달리 TR과 KJV는 "성부, 진리, 성령인데 이것을 증거하는 이가 셋이다"로 언급된다)은 이미 언급했듯이 사실상 에라스무스 자신이 어떤 사본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대신에 그가 단지 외압에 의해 라틴어판에서 헬라어로 번역을 해가면서까지 억지로 집어넣었던 것임이 드러났다. 그리고 설사 그 구절이 없다해서 삼위일체 교리가 전혀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삭제된 구절과 동일한 교리적 내용을 담고 있는 구절들이 그 외에도 성경 여기저기에 얼마든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KJV 옹호자들이 삭제된 구절들이 교리적으로 치명적 손상을 입혀 우리의 믿음의 기반을 송두리째 뒤흔든다는 주장은 지나치다.

 

6. 결론: KJV의 가치와 한계

우리는 TR와 KJV 역시 소중한 성경 본문이라는 사실은 인정할 수있다. 즉, 우리는 이 성경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의 가치에 대한 인정을 넘어서 독보적인 유일성과 무오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앙적 독단일 뿐이다. 또한 우리는 KJV의 기초가 되었던 TR 텍스트가 지니는 결함에 대한 비평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우리는 TR/MA와 그것에 근거한 KJV보다 NA/UBS와 이에 근거한 다른 번역성경들이 현재까지의 사본학적 관점에서 볼 때 더 신뢰할만한 것으로 여길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KJV 옹호론자들의 우려와 달리 우리는 그것들이 우리의 믿음을 방해하는 어떤 내용도 담고 있지 않음을 확신할 수 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 성경을 통해서도 놀라운 일을 해오셨다. 한글 개역성경 역시 NA/UBS을 토대로 하여 한문성경, 영어성경 등을 참고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 부흥은 KJV 옹호자들이 저급한 변개된 성경이라고 말하는 한글 개역성경을 통해 이루어져 왔지 않은가!
아무튼 TR/MT 이든지 NA/UBS 이든지 모두 방법론상의 한계는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까지 NA/UBS 판이 더 신뢰할 만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그것들을 뒷받침하는 비평방법론을 무조건 추종하는 위험성은 인식하고 있어야만 한다. 지금도 새로운 방법과 추가적인 사본연구가 여전히 필요한 상태이다. 나아가 우리는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약 성경의 본문들이 아주 좋은 본문임을 확신하고 새로운 발견이나 새로운 연구가 우리의 중요한 교리를 위협하지 않을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앞으로의 새로운 사본의 발견이나, 새로운 연구결과들이 본문의 역사와 사본 사이의 관계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결과들이 신약성경의 근본과 우리의 믿음을 흔들만한 것은 결코 아님 을 확신할 수 있다. 사본의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담겨져 있는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메시지는 영원 불변할 것임은 분명하다.
우리는 하나님이 성경의 원본을 없애신 이유가 바로 원본 자체를 신성시하여 우상에 빠지는 일을 막기위한 조치였다고 믿는다. 아마 모세의 시체가 다툼거리가 되지 않도록 숨기신 하나님의 섭리와 일맥상통할 것이다(유 1:9). 그러나 원본은 없어졌지만, 하나님은 오늘날까지 성경 사본들을 통해 자신의 말씀을 보존해오고 계신다. 현재의 사본들이 원문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하더라도 우리의 말씀의 무오성에 대한 확신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사본들의 차이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다른 고대의 세속 문헌들의 전승과 비교해 볼 때, 경이적이라 할 만큼 정확하게 전수되어 오고 있다. 이것은 명백히 하나님의 보존 섭리에 의한 결과로 볼 수 밖에 없다.
물론 사본들의 가치 판단과 원문과 동일한 본문을 찾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적 실수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께서 약간의 차이가 있는 사본들을 취급하는데 있어서 우리의 실수를 최소화 시켜주실 것을 확신한다. 성경의 계시와 정경의 수립 과정 중에 함께 하시고, 말씀을 통해 현재에도 역사하시는 성령은 말씀의 보존자로 우리의 이성을 통제해 주실 것이다.